President's Column

A reflection on our mission and the path ahead.

교육만이 유일한 희망인 가난한 학생들이 있습니다.

새벽기도회시간인데 폭우가 쏟아집니다. 밤새 내린 폭우로 이 곳 저 곳에 침수가 되었답니다. 늘 상 우기 철이 되면 경험하게 되는 선교지의 모습입니다. 먹고살기도 버거운 삶인데 폭우로 인해 더더욱 어려운 삶이 되어 버렸습니다. 필리핀국제대학교는 오늘부터 중간고사가 시작되는데 학비를 해결 못한 학생들이 너무 많아 걱정이 됩니다. 학비를 얼마라도 해결해야만 중간고사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규칙을 정하였기 때문이지요. 물론 대부분의 대학은 학비 없이는 등록자체가 불가능하잖아요. 그러나 필리핀국제대학교는 예외입니다.

다행히 비가 많이 내린 관계로 모든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 졌습니다. 그런데 왜 나의 마음에 안도감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유는 학비를 준비 못한 학생들에게 하루라도 더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처참 하리 만큼 어려움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설명을 한다 해도 “설마 그 정도일까?” 할 것입니다.

식권을 구입하지 못해 식사를 거르는 학생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한 학생, 한 학생의 가정형편을 살펴보면 어쩌면 그렇게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학생들의 부모가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가정이 거의 없습니다. 이미 부부관계가 깨어진지 오래 되었고, 17, 18세에 아기를 낳았기에 부모의 나이가 30대인 부모가 많이 있을 정도이니까요. 친가의 할머니나 외할머니 품에서 어렵게 성장한 학생들은 부모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랐기에 늘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매주 주말이면 막노동을 해서 차비를 준비하여 학교에 등교하는 Derwin(더윈) 이라는 한 남 학생이 있습니다.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은 쓰레기 하치장인데 그의 부모는 더윈이 주말에 막노동을 하여 번 차비를 달라하여 결국 차비가 부족하여 학교를 오지 못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 학생이 몇 일째 보이질 않아 궁금하였었는데 오늘아침에는 새벽기도회 참석 후 아침 조깅을 하는데 그 학생이 함께하여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더윈”! 보고 싶었다! 왜 몇일 안보였었니? “차비가 없어서요.” 그리고 “등록금 준비를 할 수가 없었어요.” 약간 쑥스러운 표정으로 한 그의 짤막한 대답입니다.

아침에 출근해 보니 사무처직원이 책상위에 펼쳐진 동전들을 세고 있었습니다. “무슨 동전이냐?”고 물으니 “마리카”라고 불리 우는 한 여학생이 돼지저금통을 깨어 가져온 등록금이랍니다. 필리핀 돈으로 2,400페소, 한화로는 6만원이 채 않되는 금액이었습니다. 이제 시험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침에 직원회의가 총장실에서 있었습니다. 주요안건 중 하나가 등록금 미납의 건이었습니다. 나는 직원들에게 물었습니다. “우리학생들이 어떻게 등록금을 해결할 수 있을지 그것이 의문이다. 여러분들은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들은 합창이라도 하듯이 동시에 대답을 했습니다. “총장님, 우리는 더 어려운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도 먹지 않고 모으면서 학교에 다녔지요. 어떻게 먹을 것 다 먹으면서 해요.”

“어떻게 먹을 것 다 먹으면서 해요.” 라는 직원들의 말이 내 귓가를 떠나질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해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교육이 곧 그들의 미래요, 희망이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의 대학, 필리핀국제대학교가 얼마나 중요한 교육기관인지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참하리만큼 가난한 학생들이 어렵게 공부하여 이 곳 저 곳에서 교사로, 목회자로, 직장인으로, 지도자로....우뚝서가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모습을 잠시 떠올려 보았습니다. 필리핀국제대학교 학생들의 모습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PIC는 Heavenly College입니다.

말론이라 부르는 학생이 있습니다. 35살이나 되어서야 PIC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동안 그가 얼마나 방황하는 삶을 살았는지는 이곳에 오기 직전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 쉽게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약 3년 전 그는 마약중독자였습니다. 마약을 하지 않으면 삶을 지탱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우울증 등으로 시달리다가 싼타루시아 백화점 건너편에 있는 주유소 앞에서 쓰려져서 자살을 결심하기까지 하였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그에게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그가 필리핀국제대학교 교목 싸미 페르난도 목사입니다. 그는 말론과 초등학교동창생이었고 고등학교시절까지 아주 가깝게 지내온 사이였습니다. 함께 방황하는 시절도 있었고, 마약도 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싸미목사는 일찍 깨닫고 신앙의 길을 찾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필리핀국제대학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신학공부를 마치고 목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말론은 갑자기 오랜 친구인 싸미 페르난도 목사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혼자말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내가 인생을 포기하고 죽더라도 내 친구를 만나보고 죽어야지. 그 친구도 나와 같이 마약도 했었고 방탕한 생활도 했었으니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그는 어떻게 해서 필리핀국제대학에 도착했는지 모릅니다. 죽기를 각오한 걸음이었습니다. 마약기운에 정신은 몽롱해지고 사리분별 못하는 정신병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그의 친구인 싸미페르난도 목사를 만났습니다. 첫 마디가 그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친구야! 나 이제 죽을 것 같다. 나 좀 도와주라.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죽음의 길에서 살수가 있겠니? 너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하였으니 방법을 알려줄 수 있지 않겠니?”

싸미 목사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래. 방법이 있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너는 살 수 있어.”

드디어 말론은 그의 친구 싸미 목사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외롭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그는 현재 필리핀국제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하여 사역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자신의 과거의 삶을 회개하며 마약중독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회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소명감에 불타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모님을 전도했습니다. 전도방법이 좀 특이합니다. “ 부모님, 예수님 믿으세요. 당신의 이 부족한 아들이 마약중독자로 죽었다가 예수님만나고 다시 살아왔잖아요. 이 아들의 기적과 같은 변화를 보시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시면, 내가 다시 과거의 죄악 된 삶으로 돌아갈 겁니다.” 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고합니다.

그때 그의 부모님의 대답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아들아, 네가 믿는 예수님을 믿겠다. 그런데 네가 다니고 있는 필리핀국제대학교(PIC)는 정말 ”Heavenly College“(하늘에 속한 대학교)이구나! 너를 이렇게 새사람 되게 만들어 준 학교가 참으로 자랑스럽구나!”라고 하며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필리핀국제대학교는 하나님의 대학이며 heavenly college임이 분명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대학 공동체 안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세계적인 기독교지도자 양성을 위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행복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한 끼 먹은 셈 치고 몇 번만 절약할 수 있다면 가난한 필리핀국제대학교 한 학생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KOREA POST 주간신문에 4주에 걸쳐 연재 된 글(1)

하나님의 대학, 필리핀국제성결대학교(1)

(매일 매일 사도행전 적 역사를 경험하며)

주일아침, 오늘은 딸락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제자, 제마 탄도이 목사의 초청으로 예배설 교를 위해 아침 일찍 아내와 함께 집을 떠났다. 약 10년 전, 교회가 개척 될 때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화산과 홍수의 피해로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하던 재해민들이 바로 이곳(딸락, 스위소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촌을 이루었고, 술과 마약, 놀음에 빠져 사 는 영적으로 매우 침체된 마을이었다. 이곳에 새로운 영적 변화를 기대하며 교회를 세웠다. 그 동안 4명의 목회자가 사역을 감당하였으나 큰 변화나 열매가 없었고 영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역이라는 이유로 모두 떠나 버렸다. 후임자를 위해 기도하던 나에게 제마 목사가 방문하여 “본인에게 사역의 기회를 준다면 최선을 다 하겠다” 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결국 4년전 국제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갓 목사안수를 받은 제마 목사가 담임교역자로 10 명도 채 않되는 성도들과 함께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1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교회는 놀라운 성장을 가져왔으며, 교회의 성장과 함께 지역 의 놀라운 영적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바로 오늘, 1년 동안의 사역의 열매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예배에 나를 초청한 것이다.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예배실을 꽉 메운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예배도중 성도들의 신앙간증은 참석자 모두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다. “결혼식 첫날부터 알콜 중독자로 살던 깡패 두목이 완전 새사람이 되어 이제는 교회의 충실 한 청지기가 되었다”는 로이드 형제의 간증이 있었고,

“부부간의 갈등문제로 가정이 파괴되고 이혼 직전에 있던 부부가 이제 새롭게 변화되어 행 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간증을 예나 자매가 눈물을 흘리며 전해주었다. “이단 종교에 빠져 한 때는 재정을 총괄하던 중직이었던 내가 이제는 새롭게 변화되어 행복 한 삶을 살게 되었노라”고 간증하던 존 에스테반 형제......

참으로 놀라운 변화의 모습들이었다. 사람들이 변화되니, 그 지역이 변화되었다. 이제는 교 회가 그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며 영적으로 인도하는 센터가 되었다.

온 성도들은 제마 목사의 영적지도력을 인정하며 존경 하였고, 제마 목사는 “국제성결대학 에서의 철저한 영적훈련과 졸업 후 한국교회에서 경험 한 현장실습 의 결과” 라고 고백하며 겸손의 태도를 잃지 않았다.

이제는 성도수의 증가로 교회가 비좁아 새롭게 증축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제마목사의 영 적 지도력이 인정되어서인지 국제성결대학에 다니는 스위소교회출신학생이 3명이나 된다.

1991년 6월 21일 필리핀에 도착하면서 지금까지 변함없이 마음에 두고 있었던 생각은 “선 교의 최종 목표는 영적 지도자양육”이었다. 어느 사회나 국가 및 단체에서도 지도자가 누구 냐 하는 문제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지도력에 의해 성 패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심혈을 기울여 열심히 심었던 씨앗들이 열매를 맺기 시작하여 이제는 각 사역지에 서 영적지도자로서 헌신하고 있는 모습들이 참으로 아름답다. 국제성결대학졸업생들의 영적 지도력이 각 지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본 필자는 지면을 통해 필리핀성결대학이 훌륭한 영적 지도자를 육성하는 하나님의 대학으 로 발전하게 된 사도행전적인 역사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길 원한다.

(1996년 6월 10일 성서학원 개교)

1986년 9월부터 기독교대한성결교회총회산하 해외선교위원회파송 선교사들이 필리핀에 도 착하면서 본격적으로 교회개척사역이 시작 되었다. 현지교회개척 사역을 위해 현지사역자 들이 필요하였고 사역지에서 만나 영입 된 사역자들의 교단 정체성의 문제와 자질문제가 대 두 되면서 세미나 사역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매년 분기별로 세미나를 개최하여 정체성의 문제와 자질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모교인 서울신학대학교교수들을 초청하여 재교육을 실시하 였다.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은 한계를 경험하게 되었고, 결국 1996년 6월 10일 필리핀국제 성결대학교의 전신 성서학원이 파식성결교회에서 5명의 신입생과 함께 개교하게 되었다. 선 교초기 한국기독교의 역사에서도 경험하였듯이 연세대학교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와 이화여 대 전신인 이화학당이 설립 될 당시와 같이 작은 월세 집에서 열악한 조건으로 교육을 시작 하게 되었다. 학교시설이라곤 초라한 강의실이 전부였으며, 학생들의 매끼니 식사문제도 해 결하기가 어려운 실정에서 두 번씩이나 이사를 해야만 했다.

개교 2년 후인 1998년, 학생들의 수가 20명으로 증가하면서 학교운영비도 만만치 않은 가 운데 한국의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IMF! 국가적으로나 교단적으로 새로운 결단이 필요했던 중요한 시기였다. 우선 교단에서내린 특단의 조치는 경제가 안정될 때까지 조기안식년제도 를 도입하여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하고 모두 철수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혼자 남게 되 어 선교부대표, 총회장, 신학교학장, 십자군전도대장직을 동시에 겸하게 되었고, 15명의 현 지목사들과 교단발전위원회를 조직하고 자립을 위해 서로협력하게 되었다. 현지총회도 체계 적이고 원할한 교단행정을위해 운영비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모든 교회는 총경상비 5%를 상 회비로 납부하기로 결의하였다. 학교의 상황 또한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할 상황이었다. 한 국의 후원자들로부터 송금되어져오는 후원비는 환율의 변동으로 인해 절반으로 줄어버렸고 학교운영을 위해 고용된 교직원들의 임금도 지불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기도하면서 얻은 최 선의 해결책은 우선 먼저 우리가족이 살던 월세 집을 정리하고 월세를 절약하여 학교운영비 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고 학생들과 함께 살기로 하고 이사를 하였다.

KOREA POST 주간지 연재기사(2)

하나님의 대학, 필리핀국제성결대학교(2) (매일 사도행전 적 역사를 경험하며)

사역을 하면서 늘 경험하는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을 주신다” 는 것이다. 고국이 IMF라는 경제한파를 통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학교는 폐교의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중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환란을 통해서 더욱 기도하게 되고, 철저히 준비하게 되며 결국 더욱 확장되어 가게 되는 것이다.

고국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었던 특단의 결정은 특별 금식기도회 를 선포하고 고국의 경제회복 및 필리핀 복음화를 위한 학교발전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었 다. 여러날, 여러달, 많은 시간을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 드렸다. 비좁은 강의실에서, 예배실 에서, 기숙사에서 새벽마다 밤마다......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의 인도하심으로 기도의 응답 을 받게 되었고,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 했다. 하나님께서는 전 도서의 말씀과 함께 많은 동역자들을 붙여 주셨다."두 사람이 한사람 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전도서 4:9)"한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12)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도하심으로 경제가 회복되어졌고, 1998년 12월 21일 신학교 이사회 를 조직하게 되었다. 초대 이사장에 이 상원 목사(인천교회)가 취임하게 되면서 교단적으로 도 신학교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부족했던 도서가 점점 채워져가고, 행정적인 면 에서도 체계가 잡혀가게 되었다.

드디어 1999년 6월 1일 필리핀신학교연맹(PABAT)회원교가 되면서 필리핀성결신학교로 교 명을 변경하게 되었다. 교육부 인가 학위는 아니었지만 졸업 후에 신학대학원에 진학이 가 능해졌다. 2000년3월 은 개교이래 처음으로 갖게 되는 졸업식이었으며, 5명의 1회 졸업생이 배출되었 다. 졸업 후 졸업생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여 학교를 홍보하고 한국교회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였다.

학교를 운영하면서 갖게 된 딜레마는 “어떻게 인재들을 발굴하여 영적지도자로 배출 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었다. 매년 신입생을 모집하기위해서 각 지역교회를 방문하며 학교를 홍 보하고 입시설명회를 가져 보았지만 결국 교육부인가 학위 없는 비인가 신학교의 자격으로 는 인재발굴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결국 숙식이 제공 되고 전액장학금으로 학업 할 수 있다는 조건에 대부분 지방에서 온 학생들로 학교가 채워지게 되었다.

마침내 2001년 초에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학교설립목적 과 취지를 다시 재정립하 고 인재등용을 위해서는 교육부(CHED)에서 인정할 수 있는 학교시설을 갖추어야한다”. “선교의 최종목적은 영적지도자 배출이며, 영적지도자 배출을 위해서는 양질의 기독교교육 기관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자.” 헌신을 다짐하고 모두가 마음을 같 이하여 기도하기로 결심하였다. 가진 것 이라고는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하나!

대지를 구입하기위해 사방을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였을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 답해 주셨고, 하나님의 선지학교를 위해 가장 적당한 장소를 예비해 놓고 계셨다. 새롭게 조직 된 이사회에서도 대지구입을 위해 이사회임원중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나 역부족 이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한 후원자를 만나게 하셨다. 서울제일교회 이정숙 사 모님이셨다. 우리학교를 방문하신 사모님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신학교를 운영하는 모습 에 큰 도전이 되신 것 같았다. 낡은 판자와 함석 등을 붙여 만든 기숙사, 비 좁은 강의실, 도서실 등 어느 한구석 제대로 갖추어진 곳이 없었으니 어려움을 많이 경험해 보신 사모님 의 마음에 얼마나 큰 부담을 갖게 하였을까 짐작이 간다.

대지구입을 위한 잔금 치루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잔금은 그 당시 한화로 1억 원 정도 되었는데, 준비된 것은 한 푼도 없었고 나는 기도실에서 하나님만 바라고 있었다. 잔금지 불해야 할 날 일주일 전, 한국에서 국제전화가 왔다. 이 정숙 사모님이셨다. “할렐루야! 선 교사님! 나 이제 오늘부터 다리 펴고 편히 잘 수 있게 되었어요. 필리핀 다녀온 후 대지구 입비 준비를 위해 한 달간 철야기도를 했는데, 오늘에서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셔서 1억 원을 준비 했어요. 내일 선교국을 통해 보내드릴께요”. 한 달 동안 철야하시면서 대지구입 비를 위해 기도하셨다니........

1천만 원이 부족하여 당신께서 통장을 깨고 채워서 준비하셨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하나님 께 감사드리며 다시한번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하는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의 은혜로 대지가 구입되었다.

2002년 11월 6일은 필리핀선교 16주년을 맞이하여 필리핀성결인대회가 있었다. 필리핀대 학교대강당에서 약3천여명의 현지성도들과 한국 모교회의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행사가 진행되었다. 바로 이때를 기회로 삼아 다음 날인 11월 7일 날 신학교 기공예배일로 정하고 한국에서 온 모든 교단 지도자들을 참석케 하였다.모두의 염원이었던 신학교기공식 이 있었다. 그 동안 양적인면의 성장에 치중한 결과 수적으로는 많은 성장이 있었으나, 반 면에 목회자의 자질문제가 대두 되었고, 그로인해 어려움을 겪는 교회들이 생겨나게 되었 다. 이제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였다. 다시 말하면, 지도자 양성기관인 신학대학의 역할과 사 명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대학의 건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신학대학건축의 중요성)

*4년제 정규대학으로 인가가 가능하게 된다. 필리핀정부가 인정하는 4년제 대학이 되면 양 질의 기독교 지도자들을 양성 할 수 있게 된다.

*목회자연장교육을 감당하게 된다. 당면과제중 하나는 현장목회자들의 연장교육의 부재이 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교육을 받았다 하 더라도 실제적인 사역경험과 훈련이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산지식을 가르 치며 훈련 할 수 있는 연장교육기관이 필요하다.

*동남아시아의 선교센터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동남아시아는 대부분이 기독교학교가 불법 으로 간주된다. 더욱이 신학교육은 어려운 실정이다. 각 선교지의 지도자들을 유학시켜 본 신학대학에서 수학 후 선교지로 재 파송받아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감당 할 수 있게 된 다.

*교단신학대학 및 지방신학교들과 자매결연을 통하여 교환교수 및 교환학생, 학점인정제 등 을 통하여 학습의 기회를 넓힐 수 있게 된다.

*영어연수센터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매년 영어연수를 위해 필리핀을 찾는 젊은 이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필리핀국제성결대학교는 이들을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 신앙교육과 함 께 양질의 언어교육을 실시할 수 있게 된다.

*단기선교훈련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 필리핀은 환경적으로 선교훈련장으로서 최적지이다.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이며, 종교적인 활동이 자유 롭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 할 수 있는 선교지이며, 비용이 저렴하고, 필리핀성결교회총회가 이미 조직되어 있는 등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중요한 이유들로 인해 대학건축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KOREA POST 주간지 연재기사(3)

하나님의 대학, 필리핀국제성결대학교(3) (매일 매일 사도행전 적 역사를 경험하며)

문제는 건축비 모금이었다. 짧은 지면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사도행전적인 역사들을 글로 표현 할 수 있겠는가? 여러 날 여러 달 여러 해를 건축비 모금을 위해 동분서주 하며 달렸 다. 각 건물의 머릿돌에 기록되어 있듯이 수 많은 작은 손길들이 함께 어우러져 이룩한 열 매들이다. 건축비 후원자 중 하나는 시골교회출신으로 정신지체청년이었는데, 매일 우유를 배달하며 모은 통장을 깨어 건축비로 하나님께 드렸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간증을 통해 들었을 때 모두가 눈시울을 적셨다. 최근에 전해들은 이야기이지만 그 청년은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 품으로 갔다. 국제성결대학의 건물에 쌓인 벽돌 하나 하나에는 이와 같이 헌신했던 분들의 사랑과 정성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어느 단칸방에서 세를 들어 살고 있던 한 권사님은 학교의 어려운 소식을 듣고는 어렵게 모아 만든 자신의 전 재산 2,000만원을 구내식당주방기구구입을 위해 헌금하셨다. 그 권사님의 살아온 삶의 간증은 우리의 마음을 울렸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다. 하루는 갑자기 건축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길이 막혔다는 소식이었다. 선교 지에서 늘 경험하는 것이지만, 새로운 영적싸움이 시작되었다. 기도 외에는 영적싸움에서 승리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학교기도실에서 특별 기도를 시작하는데 갑자기 인간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어 려울 때 부모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께 불만을 토로하였다. “하 나님 왜 가나난 부모님을 저에게 허락하셔서 이렇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시지 못하 는 것입니까? 어느 선교사는 아버지가 목사요 장로요 해서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데, 저에 게는 왜 그런 축복이 없는지요!”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폭풍의 시간 이 지난 후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깨달음을 주셨다. “예, 하나님. 저에게 하나님만을 전 적으로 의지하게 하시려고 이렇게 어려운 환경을 주셨군요. 예, 감사합니다. 물질적으로 의 지할 것 없는 부모님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후로 사역 속에 함께 하신 하나님의 사도행 전 적 기적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필리핀국제성결대학은 기도모임이 많다. 하나님을 전적 으로 의지하는 기도 없이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 할 수 없음을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필리핀교육부(CHED) 정규4년제대학인가를 받을 때도 경험한 일이지만, 전 교직원이 매일 아침 7시50분에 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하고 있을 때 2명의 낮선 분들이 함께 동참하였었 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교육청에서 보낸 학교평가원들이었다.

그들의 고백이다. “대학인가를 위해 그토록 전 교직원들이 기도를 하는데 평가원으로서 어 떻게 좋은 평가를 주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제목을 하나씩 응답해 주셨다.

2003년 5월 9일에는 국제성결대학(International Evangelical College)으로 학교 명을 변경 하였고, 같은 해 11월 18일 필리핀교육부에 학교법인등록을 완료하였으며, 12월15일 드디 어 월세 집에서 신축교사로 이전하게 되었고, 2004년 3월23일 대학봉헌식을 하게 되었다. 2005년 2월 14일은 꿈에 그리던 필리핀교육부 4년제 대학인가(기독교교육과, 신학과, 목회 학과)를 받게 되었다.

이제 양질의 기독교 지도자를 양성하기위해 모두가 전력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매주일 현 지교회에 초청받아 예배설교를 할 때면 학교홍보를 빼놓지 않았다. “필리핀국제성결대학은 하나님의 대학이며 예수중심의 학습의 장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 킬 영적기독교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소명과 비젼을 주셨습니다. 자녀들 중에 전교 석차 10등 안에 드는 학생이 있으시면 저희 대학에 보내주세요. 100% 장학생으로 받겠습니다.” 몇 년 을 가는 교회마다 모임마다 소리쳐 홍보하였다. 지난해는 신입생 중 30%이상이 전교 석차 10등 안에 드는 우수한 인재들이 대거 입학을 하게 되었다. 현재 200여명의 학생들이 미 래의 영적지도자가 되기 위해 신앙훈련과 함께 학업에 전념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중국학 생들이 9명, 미얀마에서 온 학생 이 2명, 베트남 학생이 2명, 한국학생이 3명이다. 학교의 인식이 나로 새로워지면서 우수한 인재들의 지원율이 더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그동안 기도해오던 목회자연장교육기관대학원과정)이 개설되어 20여명의 대학원생 이 등록하여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산지식을 배우고 있으며, 대학부설로 운영되는 언어연수 과정이 개설되어 많은 한국학생들이 등록하여 신앙교육과 함께 양질의 언어교육을 받고 있 다. 2006년 4월4일은 드디어 필리핀에서는 최초로 한국학과가 개설이 인가 된 날이다. 여러해 전부터 준비했던 한국학과 개설 ! 교육청을 얼마나 많이 드나들며 생소한 학과 개설을 위해 교육장에게 설명을 했던지..............하나님의 은혜였다. 많은 인재들이 입학하여 한국어를 비 롯하여 한국에 대한 다양한 학문들을 연구하며 미래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2006년 9월 5일은 개교기념일을 맞이하여 개교10주년 기념행사 및 비젼선포식을 준비하였 다. 그 날의 감격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현지성도 약 7,000명이 참석하였고, 한국교 단지도자 150명, 인천장로성가단 의 특별공연, 국제성결대학역사화보집 발간 등 다양한 행 사들이 진행되었고, 국제성결대학의 비젼이 선포되었다.

(필리핀국제성결대학교 2006년 Vision 선포내용) 필리핀국제성결대학은 필리핀 안티폴로지역에 세워진 그리스도중심의 학습의 장이며, 하나 님의 대학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사명은 “성령의 능력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유능한 기독교지도자들을 교육하여 양성하는 것”이다.

Vision 1. 학교부지 확장

Vision 2. 체육관건립 및 학생선교를 위한 체육학과 개설

Vision 3. 사회복지학과 개설 및 실버타운 설립

Vision 4. 특수교육학과 개설 및 특수학교설립

Vision 5. 유아교육학과 개설 및 부속 유, 초, 중, 고등학교 설립